바로 기하학에서 편리한 대수학으로 뻗어나간 수학은 근대에 이르러 크게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첫째는 모든 것은 계산가능하다. 계산가능하다는 건 질서가 있다는 것이고 "분류와 배열"을 통해 자연과 세계를 체계화할 수 있다는<보편수학>의 모습이요, 그 두번째는 미적분학과 함께 등장한다. 즉, 속도가 거리가 되기도 하고 가속도가 되기도 하며 곡선이 접선이 되었다가 면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변환과 파생"에 중점을 둔 <해석학>의 모습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수학의 엄밀성을 확실히 하자는 운동(movement)가 일어났고 이런 노력은 바로 가장 확실한 수학의 근간, 바로 수 그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르게 된다. (복소수: 실수 와 허수> 실수: 유리수와 무리수> 유리수>정수>자연수)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집합론>을 발표하고 너무도 거센 학계의 반발에 왕따가 되어 정신병까지 앓아야 했던 불행했지만 천재적인 칸토어(Cantor, 1845-1918)가 있었다.

우선 우리가 중학교 시절부터 배운 적이 있는<집합>은 그 당시 수학자들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1. 자연수의 개수는 무한히 많다.
2. 실수의 개수는 무한히 많다.
3. 그렇다면 자연수의 무한이 실수의 무한보다 더 클까? 무한에도 서로 다른 크기가 있는
    걸까?
4. 무한을 대체 어떻게 세고, 비교하고 계산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수와 무한에 대한 물음이 있었고 칸토어는 비교를 위해 "묶음을 만들자." 즉, 집합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여기서 유한집합은 어차피 개수를 세어 비교할 수 있다. 그런데, 무한집합은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바로 여기서 일대일 대응이라는 방법이 나온다. 왜냐하면 원소들 사이에 일대일 대응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원소의 개수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칸토어는 무한집합에는 유한집합과 달리 원소의 개수가 아니라 원소의 농도라는 표현을 쓴다.)

ex)다음 두 가지 경우의 무한집합을 비교해 보자.

자연수:      1,2,3,..............n,(n+1),...
100의 배수: 100,200,300,....100n,100(n+1)....

아마도 자연수의 무한이 더 크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대일 대응을 시켜보면 무한집합에서 둘 다 원소의 농도는 같음을 알 수 있다. 즉,무한집합에서는 부분이니 전체니 하는 구별은 무의미한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칸토어는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0과 1사이의 원소의 농도와 실수 전체의 농도는 어떨까? 아마 이것은 아래 그림을 보는게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0과 1 사이의 실수전체의 농도는 실수전체의 농도와 같다. 왜냐하면 일대일 대응이 존재하니까. 즉, 공간상(3차원)을 가득 메운 점의 농도나 편명상(2차원)에 있는 점의 농도나 직선상(1차원)의 점의 농도나 모두 같은 것이다. 一卽一切 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에 모든 것이 구족하다! 바로 이 믿을 수 없는 무한의 비밀을 칸토어의 집합론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무리수란 무엇인가? 나뉘어지지 않는 수이다. 유리수는 조밀하지만 결국 나뉘어진다. 즉 연속이 아니다. 거기에 무리수가 더해질 때 비로서 연속으로 나타나는 거요, 그렇기에 실수가 연속일 수 있는 게고 또한 연속이기에 미분,적분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칸토어는 자연수,정수, 유리수는 모두 같은 농도를 가지지만 실수는 다르다고 보았다.거기엔 바로 무리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 순서수의 집합에 관련된 집합론의 역설도 나오지만 그건 넘어가기로 하겠다. 이쯤만 해도 칸토어의 집합론이 얼마나 수학의 근간이라는 수의 개념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에 이쯤까지만 짚어보기로 하겠다.

Posted by 고산(高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