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 롭 다 "
모두들 외롭다고 난리다.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무엇엔가 빠져들지 않고는, 미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일에 빠지든, 책에 빠지든, 음악에 빠지든, 아니면 스포츠나 여행에 빠지든, 그도 아니면 섹스에 빠지든....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외로움을 채우려고 허둥댄다. 그런데 그 외로움은 아무리 채워도 밑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가득 채워졌는가 싶으면 어느 새 바닥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강력한 것, 새로운 것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외롭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라서 쓸쓸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 주위에 수많은 존재와 생명들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외롭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거미줄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혼자라니!
나는 생각한다. 외롭다는 것은 일종의 질병이라고.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그것은 조용히 침묵하거나 명상하는 것과 다르다. 침묵은 고요히 혼자 있으면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외로움은 다른 존재들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단절되어 있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은 없다. 다른 생명들은 늘 그 자리에, 그리고 내 곁에 있다. 단지 내가 눈을 감고,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을 뿐이다.
현대인들의 고독은 도시의 닫혀진 공간과 경쟁구조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다. 쉽게 남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살가운 존재들에게조차 눈길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귀하게 쓰던 물건을 버릴 때도 무심하기 짝이 없다. 언제 내가 너를 소중히 여겼냐는 듯이 냉정하다. 헤진 신발을 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내 발을 보호해준 것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거추장스런 존재라는듯이 내팽개쳐버린다. 매사에 쌀쌀맞기 그지없다. 그리고선 가슴 가득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이다. 쓸쓸해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하소연을 해올 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당신 주위에 있는 존재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보라고. 매일 지나치는 나무도 좋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좋고, 심지어 쓰고 있는 물건이라도 상관없으니 가만히 말을 걸어보라고. 그렇게 아는 척을 해보라고...나는 내가 다루는 책이나 , 물 등의 자연물이나 칼, 연필 볼펠 등의 도구, 음식이나 옷에게 다정한 친구에게 하듯 늘 말을 건다. 늘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침에 해님에게 인사하고, 저녁에 달님에게 인사하고, 밤에는 별님에게 인사한다. 그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그들은 다정하고 살갑게 인사하고 아는 척을 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들이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혹시 내게 할 말이 있는지....
돌아보면 우리가 입고, 쓰고, 먹는 것들은 모두 생명이 있는 것들이다. 옷은 옷대로, 연필이나 공책은 그것대로, 또 매일 먹는 밥은 밥대로 어느 것 하나 생명아닌 것이 없다. 나는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명을 갖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처럼 느끼고 생각한다고. 우리처럼 노래하고 싶어하고 춤추고 싶어한다고. 존재방식은 비록 우리와 다르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명이라고. 친구처럼, 형제처럼. 그리고 상대방의 얼굴을 살피고, 마음을 헤아리라고. 그리고 필요하면 축원도 해주고, 기도도 해주라고.
그렇게 나와 관계하는 그 모든 존재들의 마음을 살피다 보면, 내가 쓰던 물건들에게 말을 건네다 보면, 외로울 틈이 없다. 그리고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이 금새 풀어지고 기쁨으로 가득차게 된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어떤 물질적 충족보다도 짜릿한 것이다.
게다가 이 세상에 수고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반드시 수고를 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밥 한끼조차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손길과 해님과 비와 바람과 땅속의 미생물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먹고 입고 쓰는 그 모든 것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맺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걸핏하면 돈타령, 여자타령, 세상타령을 한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맛난 것을 먹을 수 있고,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갖는 것보다는 못하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존재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보라. 그것이 나무이든, 집이든, 해님이든, 산이든 강이든, 말을 걸면 마음이 통하게 된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게 되면 외롭지 않다. 혼자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무릇 생명을 가진 것은, 형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처럼 사연이 있다. 우리가 그러하듯 그들 또한 수많은 관계와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 내 주위의 존재들을 불러 깨워보라. 김춘수 시인이 말하지 않던가. 내가 꽃이라 불러주니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내가 알아주면, 상대방 또한 마음을 열어 나를 알아준다. 그보다 더 살갑고 신나는 것이 또 무엇이랴. 외로움은 시키지 않아도 절로 기쁨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 2004년 비오는 어느날 군대에서 쓴 나의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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